적정한 건축설계비는 어느 정도일까요?
- posted 7월 9, 2019
가장 작은 규모의 건축 프로젝트는 주택 수리 혹은 인테리어 공사, 그리고 주택 공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프로젝트에서는 기획자-대개 대지주, 건축주, 시공자까지 겸하게 됩니다 는 초심자들이 많고, 그러다보니 관련 산업의 배경이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즘, 프런트 엔드(front end) 경험이 늘어나다 보니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어 글로 적어 보려고 합니다.
설계시장을 보면,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꼭 우리나라라고 한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건축설계 시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서 흔히 보는 주택의 설계비가 얼마나 나올까요?
제대로 설계를 하기 위해서는 최소 1억원 가량이 필요합니다. 물론, 이런 시장은 소위 하이엔드 시장이라 일반적인 대중시장에서 경험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5천만원을 전후한 비용이 형성대는 중가대의 시장이 있습니다. 양자간 금액의 차이는 건축을 제외한 영역의 크리에이티브가 사라지는 대신 이를 건축 설계자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에 기인합니다. 아마 이 금액대도 주변에서 쉽게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개 2천~3천만원의 설계비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액대입니다. 이 금액이면 건축을 제외한 영역은 인허가용 도서작성의 수준으로 업역이 크게 줄어들게 됩니다. 그나마 건축에서 커버를 해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젝트의 품질을 담보하기가 힘든 상황으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로우엔드 시장에서는 천만원 정도의 설계비가 흔한 경우일 것입니다. 이 경우 인허가를 위한 도서작성 이외의 작업은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좀 더 익숙한 인테리어 시장을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저에게도 가끔 주택 등의 인테리어 의뢰를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1차 면담을 하고 10일 전후의 기간에 제안서를 작성하여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모든 의뢰인들은 만족스러워 하지만, 12주의 설계기간과 2천만원의 설계비, 그리고 OR(Owner Requirement) 문서를 작성해올 것을 요구하고 나면 연락은 없어지게 됩니다. 인테리어공사에서 설계비를 부담한다는 경험이 없고, 설계자가 나의 사생활을 알려고 하는데 불쾌감이 따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는 인테리어 설계시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 주로 거래되는 정형화된 건축물의 경우-주로 아파트나 상가, 오피스텔이 이에 해당될 것 입니다. 인테리어 시장을 보면 대개 평당 200만원 정도에서 시공비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이 금액에서 시공자는 설계없이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걔중에는 설계 출신의 시공자도 있겠지만, 롤이 달라진만큼 출신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서 말한 모든 공종의 설계를 인테리어 시공자가 다 맡아서 설계와 시공을 동시 수행해야하는 상황이 됩니다. 건축주는 사진 몇장과 “이런이런 느낌~”이라는 말로 업무 협의가 완성되었다 생각하고 구체화된 견적서를 요구하실 것입니다. 설계없이 어떻게 견적을 산정하는지 저로서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만, 이 시장에서 일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몇 개의 정해진 템플레이트를 가지고 움직일테니, 이에 따라 견적은 대동소이할 것이고 시공 역시 손발을 맞춰 온 공종별 시공자들이 알아서 해 줄 것입니다. 정형화된 아파트의 공간 구조에 최적화된 일종의 대량생산품 시장과 같습니다.
건축과 함께 architecture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분야가 소프트웨어입니다. 비건한 예가 아닐 수 있겠지만, “저는 윈도우즈가 좋은 것 같아요. 근데 UI는 OSX이 맘에 들고, 리눅스처럼 좀 가볍게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학창 시절에 OS2를 썼는데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이거 참고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OS설계를 의뢰하는 것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여기에 5년의 개발기간과 2천억원의 비용을 제안하면, “아니 네이버 검색하면 10만원이면 살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건축은 customized product이고, 소프트웨어의 경우 한계생산비용이 0에 수렴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극단적인 mass product이다 보니 시장도 생산방식이나 성격도 건축과는 완전히 다른 경우이긴 합니다.
하나의 건축설계를 위해서는 최소 24주 이상의 시간과 7~10여개의 분야별 전문가들이 건축주의 요구사항을 함께 고민한 결과를 필요로 합니다. 인테리어 설계 역시 인허가 과정과 몇 가지 공정이 빠지겠으나 건축에 비해 상황이 많이 다르진 않습니다. 적절한 대가의 지불없이 Pinterest에서 찾은 몇 개의 이미지와 “이런 느낌으로…”의 설명만으로는 그 결과를 취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직업과 취미, 가족관계, 생활습관, 사용자의 구성과 사용목적, 중장기적인 계획, 크게는 인생의 철학 등이 건축가와 공유되어지고, 정당한 대가로 이런 작업이 가능하게 될 때 비로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